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고 정용철 목사님께서 지난 25일 아침 7시, 향년 100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연합장로교회에 온 지 얼마 안되어 목사님을 뵈었는데, 저의 손을 꼬옥 잡아주시면서 교회를 부탁하셨고, 그 또랑또랑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기도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전화를 드릴 때마다, 저 멀리 시애틀에 계셨지만, 교회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해주시고 싶은 충고의 말씀이 정말 많이 있으셨을텐데, 목사님은 단 한번도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으시고 늘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저 자신이 모자란 것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그때마다 오히려 목사님께 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곤했습니다.

정목사님은 어떤 분이셨나를 생각해보니 몇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시인이셨습니다. 생전에 얼마나 많은 시를 쓰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목사님이 작시하신 찬송가들과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어보면, 정목사님은 정말 시인이셨구나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깊은 묵상과 기도속에서 우러나오는, 단순하면서도 큰 울림이 목사님의 말씀과 찬양시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의 설교는 짧지만 오랜 울림이 있습니다. 소원의 항구라는 설교말씀에서 목사님은, 우리가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항해에 대해서 말씀하셨 던 것, 또 이민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는 쉼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한다는 말씀은, 벌써 수 년 전에 들은 말씀인데도 아직까지 제 마음에 울리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행동가이셨습니다. 한국찬송가위원으로서, 워싱턴한인봉사센터의 창립자로서, 워싱턴교회협의회 회장으로서, 미국장로교회의 한인교회협의회(NKPC)의 회장으로서, 수많은 신학생들을 키우신 영하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서, 또 지금은 제가 섬기고 있는 직장내 성경공부모임인 정오의 샘터의 설립자로서, 목사님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민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분명하게 그리셨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신 행동가이셨던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데, 살아있는 믿음의 모범을 목사님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사람을 키우셨습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들이 날아드는 것 처럼, 목사님은 워싱턴지역에서 많은 일꾼들을 키우신 신앙의 거목이셨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사라지지만,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목사님이 돌보신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훌룡하고 믿음 좋은 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개중에는 목사님의 속썩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목사님을 대적하는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냥 큰 나무처럼 든든하게 서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이 이 지역에 오실 때마다, 많은 그의 제자들이 모여들곤 했습니다.

1969년에 교회가 시작되고, 교회가 가장 어리고 모든 것이 엉성할 때, 목사님은 인내하며 행동으로 섬기며, 열심히 공부하시면서, 교회를 세워나가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의 터전을 든든하게 세워주신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님, 정용철 목사님이 너무도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당신이 기도하며 지으신 찬송시 그대로,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신 고 정용철 원로목사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잊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목사님이 시애틀에 살아계실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다시 목사님의 그 격려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니, 갑자기 목사님의 빈 자리가 너무도 크게만 느껴지네요.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목사님의 뒤를 따라 이 교회를 섬기게 된 것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 김해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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