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숙열사를 소개합니다 – 3.1운동 99주년을 맞이하여 –

지난 수요일은 3.1. 운동 99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습니다. 3.1. 운동은,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에,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입니다.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서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종의 장례식 날인 3월 1일에 맞추어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4월 13일에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기도 했습니다. 내년이 바로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3.1.운동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속한 미국장로교회(PCUSA)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윤형숙 열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남도의 유관순>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대단한 분이지만, 잘 알려져있지 않은,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윤형숙 열사를 우리 성도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적습니다.

1900년 9월 13일 여수에서 태어난 그녀는, 7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순천에 있는 미국장로교회 (PCUSA)의 한 선교사님에게 맡겨집니다. 그녀에게 민족의식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수피아 여학교에 입학하면서인데, 수피아여학교는 미국장로교회에서 파송된 유진 벨 선교사가 세운 학교로서, 신앙과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윤 열사가 2학년이 되던 1919년 1월 20일, 고종황제가 독살되었고, 이에 분개한, 윤형숙 등 학생들은 1919년 3월 10일 오후 2시, 광주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날 만세시위에는 수피아 여학교생들을 비롯하여, 숭실학교생, 기독교인들과 농민들 등 1천여 명이 참여하였는데, 이때 윤 열사는, 일본의 기마헌병이 휘두르는 칼에 의해서, 태극기를 들고 있던 왼쪽 팔이 잘리고, 오른쪽 눈마저 실명한 채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극심한 부상과 거듭된 고문으로 감옥 문을 나설 무렵 윤열사는 온몸이 망가졌고, 그나마 실낱 같이 의존하던 왼쪽 눈마저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의 힘으로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오히려 원산의 마르다윌슨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을 공부한 후, 전주에 있는 기독교 학교의 사감과, 고창의 유치원 등지에서 어린이 교육에 힘썼다고 합니다.

그녀는 “왼팔은 조국을 위해 바쳤고 나머지 한 팔은 문맹자를 위해 바친다”면서, 연약한 몸을 이끌고 평생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6.25 전쟁이 끝날 무렵, 서울이 수복되면서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여수시에서 기독교인들과 양민 200여명을 학살하게 되는데, 그때에 우리가 잘 아는 손양원목사님과 윤형숙열사가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윤형숙열사를 생각하면서 많은 것들이 제 머리 속에 겹쳐졌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우리 선교사님들과 성도들은 그렇게도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살았건만, 요즘에 한국에서 들려오는 교회와 교인들에 관한 소식들이 뉴스를 통해 들려올 때는, 얼굴이 후끈거리고 가슴이 뜨끔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교회의 부자세습에서 부터, 재정문제, 성추문, 잘못된 가짜 뉴스에 농락되는 교회들…. 3.1.운동 99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추악한 욕심이나 편협한 생각들을 버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조국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그림을 가슴에 품으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 김해길 목사 –

<– 윤형숙열사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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