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아침 묵상

5월 22일- (갈라디아서2장) 껍질이 아니라 본질이

Author
ukpc
Date
2018-05-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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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회의]
1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3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4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5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7 도리어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8 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9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바울이 게바를 나무라다]
11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12 그것은 게바가,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13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
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다]
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심을 받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껍질이 아니라 본질이다.

아마도, 자신이 바리새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때, 껍데기에 싸여 살았던 삶을 기억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사도바울은 언제나 껍질을 벗기고 본질을 살리는 일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순수성을 살리기 위해서 바울의 타협하지 않는 성정을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선언합합니다. 할례는 구원에 관해서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3절).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할례를 구원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해왔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가운데서도 할례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여겼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메시지는 단호하고 선명합니다. 껍질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껍질이고, 복음이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껍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껍질은 내용을 보여하며, 형식은 그 내용을 담는 소중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껍질이 본질의 의미를 위협할 때,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타협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껍질에 연연하지 말고, 본질을 붙잡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껍질이 본질을 위협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본질을 붙잡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껍질과 본질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주소서. 본질이 보이면 타협하지 않고 그 본질을 추구하는 저희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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